종중의 조상 땅 뺏기? 우리가 총회부터 무너뜨린 이유
본 사례는 법무법인(유한) 이현에서 직접 수임하여 처리한 사건으로, 의뢰인 특정 방지를 위해 일부 각색되었습니다.
2심 선고일이었다.
선고가 끝나고 전화를 받았다. K였다.
"이겼어요?"
"네. 이겼습니다."
전화기 너머로 긴 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렸다. 말이 없었다. 그러다 작게 "감사합니다" 하고는 전화가 끊겼다.
소유권이전등기 소송, 1심 승소.
종중 측 항소, 2심 역시 승소.
총회결의무효확인 소송도 이미 이겼다.
사건은 그렇게 끝났다.
돌아보면, 이 사건의 승패는 처음에 이미 갈렸다.

법원 봉투를 들고 사무실에 온 날
K가 처음 사무실에 왔을 때, 손에 서류 봉투를 들고 있었다.
'부동산 처분금지 가처분 결정'
충남의 땅 14필지. 할아버지 때부터 내려온 땅인데, 갑자기 종중이 나타나 가처분을 걸었다는 것이었다.
종중 이름을 보니 '◇◇씨 ○○파 종중'. K는 그런 종중을 들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알고 보니 창립총회를 연 지 몇 달도 안 된 곳이었다. 그런데 주장은 굉장했다. 이 땅은 원래 종중 것이었고, 선조가 명의만 빌려줬을 뿐이라는 것. 명의신탁.
"이거 이길 수 있어요?"
K의 눈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종중이라는 말 앞에서 이미 작아진 것 같았다.
이 사람, 싸울 수 있다고 생각을 못 하고 있구나.
"일단 검토해봅시다."
소유권 싸움은 하지 않기로 했다
종중 측이 원하는 싸움은 뻔했다.
"이 땅이 우리 것이냐, 네 것이냐." 명의신탁이 있었느냐 없었느냐. 그걸 둘러싼 증거 싸움.
그 판에 올라가면 길어진다.
명의신탁 주장은 구체적인 증거가 없어도 역사를 내세우면 재판이 길어진다. 반박하려면 수십 년 전 매매 경위를 입증해야 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상대에게 유리해지는 구조다.
다른 판이 필요했다.
종중이 소유권 소송을 제기하려면, 그 전에 총회 결의가 있어야 한다. 종중원들이 모여서 "이 땅을 되찾겠다"는 결의를 해야 소송을 낼 자격이 생긴다.
종중 소송에서 총회 결의의 적법성은 '선결 문제'다. 총회가 무효면 종중은 소송을 제기할 당사자 자격 자체를 잃는다. 소유권의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재판이 끝날 수 있다.
그러면 총회부터 무너뜨리면 된다.
총회가 무효면 소송을 낼 자격 자체가 없다. 소유권 싸움을 시작하기도 전에 끝낼 수 있다.
문제는 총회가 진짜 무효인지 확인하는 것이었다.
족보를 직접 펼쳐보니
종중 측은 창립총회, 임시총회 1차, 임시총회 2차, 임시총회 3차. 절차를 밟은 것처럼 서류가 갖춰져 있었다.
형식만 보면 흠잡기 어려웠다.
그래서 족보를 직접 가져와서 펼쳤다.
2018년에 발간된 족보. 이 종중 파에 해당하는 19세 이상 생존 종원을 하나씩 세기 시작했다.
600명이 넘었다.
그런데 종중이 소집 통보를 보낸 명부에는 100여 명뿐이었다.
100명.
실제 종원의 15%다. 여섯 명 중 다섯 명은 연락조차 받지 못한 채, 몇 명이 모여서 결의를 한 것이다.
대법원은 이 점을 명확히 정해두고 있다.
종중총회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족보에 의하여 소집통지 대상이 되는 종원의 범위를 확정한 후, 국내에 거주하고 소재가 분명하여 통지가 가능한 모든 종원에게 개별적으로 소집통지를 하여야 한다. — 대법원 2007. 9. 6. 선고 2007다34982 판결
이 기준을 이 종중은 처음부터 충족하지 못했다.
숫자가 아주 제멋대로
총회 결의를 더 들여다봤다.
3차 임시총회 관련 서류가 네 가지였다. 원고 측 현장 확인 수치, 회의록, 결의서, 참석명부. 위임장 숫자를 각각 뽑아봤다.
가장 많은 수: 80여 명. 가장 적은 수: 50여 명.
약 30명 차이.
회의록에는 76명, 결의서에는 57명.
같은 날, 같은 총회의 공식 기록이 서로 다른 숫자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건 실수가 아니다.
어딘가에서 숫자를 꿰어 맞췄다는 얘기였다. 소집 통보가 엉터리였고, 위임장도 믿을 수 없었다. 총회 무효의 근거가 층층이 쌓이고 있었다.
종중 총회 자체가 무효라니까?
종중 측은 서류를 무더기로 냈다. 총 16개.
하나씩 열어봤다. 소유권을 다투는 별개 소송 자료들이 대부분이었다. 지금 이 재판, 즉 총회결의무효확인 소송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것들이었다.
알고 한 건가, 모르고 한 건가.
어느 쪽이든 결과는 같다. 총회 무효 여부를 따지는 재판에서, 소유권 싸움 서류를 들이밀고 있는 것이다.
법원에 바로 지적했다. 제출된 서증 16개 중 15개, 이 재판과 무관하므로 기각해 달라고 신청했다.
재판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쟁점은 하나. 총회가 유효했는가, 아닌가.
우리가 깔아놓은 판에서 놀자.
땅은 여전히 K의 것
1심에서 이겼다.
종중 측이 항소했다. 2심에서 다시 이겼다.
총회결의무효확인 소송도 1심에서 승소로 마무리됐다. 갑자기 나타난 종중의 명의신탁 주장은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 사건을 마무리하고 나서 한 가지 생각이 계속 남았다.
종중은 이름만으로도 개인을 위축시킨다.
역사, 혈연, 조상. 그 앞에서 개인은 작아지기 쉽다. K도 그랬다.
하지만 종중도 조직이다. 조직이면 절차가 있고, 절차에는 기준이 있다. 그 기준을 지켰는지 따지는 건 감정 싸움이 아니다. 숫자와 서류의 문제다.
이번 사건은 그 기준이 실제 재판에서 관철된 사례다. 족보상 종원 전체를 기준으로 소집 통보를 해야 한다는 원칙. 연락 닿는 사람만 모아 총회를 여는 관행에 제동이 걸렸다.
앞으로 비슷한 종중 소송에서 이 사건이 선례가 될 것이라고 본다.
비슷한 상황이라면, 혼자 판단하기 전에 먼저 검토부터 받아보시길 권한다.
다만, 종중 소송은 사건마다 종중의 구체적인 구조, 총회 절차 이행 방식, 자료 상태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 이 사례의 결론이 모든 상황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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